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와 찬양을 하자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도 기도하고, 찬미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선교하고자 나선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였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감옥에 갇히게 못했을 것이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는 감옥에 갇혔다고 하니, 혹시 그들이 어떤 죄를 지었기에 감옥에 갇혔을까? 하고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범행을 저질러서 감옥에 갇힌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신 것도 아닙니다.
아니 그럼 그들은 무엇 때문에 찬양을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칭찬할 것이 무엇이 있다고 찬양을 합니까? 집이 없었는데 잠잘 곳이 생겼다고요? 밥먹을 것이 없었는데 콩밥이라도 먹을 수 있어서요? 아닙니다. 이들을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습니다. 참고적으로, 바울을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 도다"(고후 7:4) 하였습니다. 바울이 왜 감옥에 갇혔는지, 그리고 바울이 당하는 고난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안식일이었습니다. 빌릴보에서 전도하다가 기도하기 위해 강가에 나갔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루디아라는 여자를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복음을 듣게 하셨습니다. 루디아 뿐만아니라 그 집이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울 일행을 집으로 모셨습니다. 바울은 거할 처소를 만났습니다. 그렇다고 기도하는 일을 중단할 수 없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러 가던 중에 귀신들린 여자를 만났습니다.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귀신들린 여자를 만났습니다.
문제는 이 여자가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그것도 따라 다니면서 소리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여자의 말이 거짓은 아닙니다. 그 여자는 참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일행이 하고 싶은 말을 그 여자가 대신하여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여자의 말을 믿을 것 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여자는 귀신이 들렸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미래를 점쳐 주었습니다. 용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주인에게 이익을 많이 가져다주었습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 여러 날을 계속하였습니다. 듣기 좋은 말도 여러번 들으면 싫은 법입니다. 처음에는 이 여인의 말이 전도하는데 필요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영 이 증거 하는 복음은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귀신들린 여종의 주인이 무서워서 귀신들린 여인 속에 있는 귀신을 내 좇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 여인은 바울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는 종의 신분입니다. 더더군다나 그의 영도 귀신에게 사로잡혀있 어서 그 영혼마저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얼마나 불쌍한 사람입니까? 바울은 그의 영혼을 자유 롭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선한 일로 인하여 감옥에 갇혔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죄가 없어도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은 마귀가 권세를 잡고 있기 때 문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선하게 살기란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감사하고 기도하고 찬송할 때 옥문이 열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렇다고 달아나지도 않았습니다. 간수가 자살을 하려고 하는데 그의 목숨도 귀히 여겼습니다. 그 결과 간수가 회개하였고 그의 집이 구원받 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의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불평과 불만을 할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역사 하심을 기대했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 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