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댄동산 처럼

우리도 사도행전의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앉아서 웃고있는 지영이와 혜영이>

물댄동산처럼 2000. 10. 8. 10:26
오늘의 말씀

오늘의 말씀

    사도행전 8장 6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사도행전 8-9장에 나타난 선교

이준행

서론

  사도행전은 역사서이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을 통하여 교회 선교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인생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 아니면
'역사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서 나만 구원을 얻는 다면,
그래서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 것이라면
사도행전은 주의 깊게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구원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과 그로 인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한다면
사도행전을 주의 깊게 읽어야 할 것이다.

  특별히 사도행전 8장과 9장은
선교의 범위가 확장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갖은 핍박 속에서도 선교의 역사는 계속되어졌다.
뿐만 아니라 핍박자 사울도 변화되어 복음 전파자가 되었다.
이러한 역사는 주님께서 선교에 직접 관여하셨기 때문이며,
기도와 성령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유대와 사마리아에 어떤 방식으로 복음이 전파되었으며,
이방인 이디오피아 내시가 어떻게 해서 믿음을 갖게 되었는지,
주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선교하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들은 왜 여러 지역 여러 사람들에게 선교하게 되었으며,
또한 어떤 방법으로 선교하였는지,
그로 인하여 어떤 역사가 나타났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다루고자 한다.

유대와 사마리아에서의 선교

  선교는 사도들만 하였던 것이 아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만 국한되었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흩어진 사람들, 그리고 집사들과 사도들 모두 힘을 합하여 선교하였던 것이다.
8장 1절부터 25절까지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선교가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확산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 이유 : 핍박(8:1)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이외의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많은 지역으로 흩어졌다.
스데반은 죽었으며, 사울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겼다.
그러나 흩어진 사람들은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오히려 핍박이 복음을 널리 전하게 하였다.

2. 방법 : 말과 표적(8:6), 기도(8:15), 증거(8:25)

  그중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가 복음을 전하는데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았다(6).
마술을 행하며 자칭 큰 자라 하던 시몬도
빌립의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13).
사도들이 이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어 성령 받기를 위하여 기도하였다(15).
두 사도도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증거하였다(25).

3. 결과 : 큰 기쁨(8:8), 성령 받음(8:17)

  더러운 귀신이 나가고 병자들이 고침을 받음으로 그 성에 큰 기쁨이 있게 되었다(8).
마술사 시몬은 크게 놀랐다(13).
또한 사도들이 안수하여 기도하니 성령이 임하였다(17).
시몬은 돈으로 하나님의 선물을 사려고 하다가 망신을 당하였다.

빌립의 선교

  이제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만이 아닌 이방인(에디오피아 사람)에게까지 복음이 전파된다.
사도행전 8장부터 시작되어지는 빌립의 선교는 주님의 명령에 따르는,
다시 말해 주님의 간섭과 역사로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사람으로서는 누가 준비된 사람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준비된 자를 만나게 하셨고,
복음을 통하여 결단에 이르게 하셨다.

1. 이유 : 주의 사자가 명함(8: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구체적으로 복음 전할 자를 지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고 까지 지시하였다.

2. 방법 : 순종하여(8:30) 복음을 전함(8:35)

  빌립은 달려 갈 정도로 지체하지 않았고,
신중히 내시가 읽는 이사야의 글을 듣고는 질문을 통하여 접근하였다(30).
그리고 그의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였다(35).

3. 결과 : 세례를 받음(8:36), 기쁨을 얻었다(39).

  내시는 즉시 결단하였고, 세례를 받았다(36).
빌립은 주의 영에 이끌려 가고
내시는 기쁨으로 복음을 받아들여(欣然) 길을 떠났다.
그 후로도 빌립은 계속 복음을 전하였다(40).

주님과 제자들의 선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전도를 부탁하고 떠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전도하시는 모습을 사도행전 9장에 나타내 보이신다.
빛으로 그리고 음성을 통하여 나타나셨다.
그러나 결국에 가서는 제자들을 통하여 완전한 결실을 맺게 된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전도의 주체가 누구냐 하는 것이다.
전도의 주체는 역시 주님이시며,
우리는 다만 그의 도구라는 사실이다.

1. 이유 : 예수의 이름을 전하기 위하여(9:15)

  예수님은 살기 등등하여 예수의 가르침을 좇는 사람을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하였던 사울을 회심시켰다.
왜냐하면, 자신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였기 때문이다.

2. 방법 : 주의 나타남과 표적을 통하여(9:4, 8, 18)

  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전도하는 방법과는 다른 방법으로 사울을 선교하셨다.
바로, 주의 나타나심과 표적이 그것이다.
표적은 다른 사도들을 통하여서도 많이 나타났지만 직접 선교의 방법으로 사용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빛을 비춰 사울을 둘렀고,
땅에 엎드린 그를 책망하였으며,
누구냐는 질문에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에게 행할 일을 말씀하셨다.
성으로 들어가면 네게 이를 자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표적은 무엇인가
빛과 음성 그리고 사울이 소경이 된 것이다.
빛은 사울을 엎드리게 하였으며,
음성은 증인들에도 똑똑히 들렸다.
소경이 된 사울은 사람들에게 이끌려 갈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아나니아를 보내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였고, 눈을 뜨게 하였다.
교회 내에서도 사울을 의심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바나바가 사울의 증인이 되었기에
사울도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전도하였고,
계속되는 유대인들의 위험 때문에 유대와 갈릴리 사마리아 지역까지 복음이 전파되었다.

3. 결과 : 강건하여 복음을 전함(9:19-20)

  사울은 아나니아의 안수로 눈을 떴고, 성령 충만하였으며, 강건하여졌다.
그리고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며칠 있은 후에 즉시 각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놀랐고,
바울은 오해하는 사람들을 보고는 더 힘을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켰다.
그럴수록 유대인들의 미움은 더 커져만 갔고,
그는 생명의 위협을 느껴 도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울로 인하여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게 되었다.

베드로의 선교

  주님은 선교를 이룸에 있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셨다.
그 중에 하나가 병고침의 역사이다.
예수님도 공생애 기간동안 전도하시면서 환자들을 치료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을 보내 전도하게 하실 때에도
칠십 명의 제자들과 열두 사도들에게 치유권능을 위임하셨다(마 10:1; 눅 10:9)

1. 이유 : 간청(9:38)

  베드로는 사방으로 두루 다니며 선교를 하고 있었다.
룻다에서는 애니아의 팔년된 중풍병을 치료하였다.
그로 인하여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왔다.
이 때 근처 욥바에 다비다(도르가)라 하는 여제자가 죽었기에
제자들이 베드로를 오라고 간청하였던 것이다.
과부들이 다비다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고, 그가 지은 옷들을 보여 주었다.

2. 방법 : 기도와 명령(9:40)

  베드로는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그리고는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다비다야 일어나라'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게 되었고,
베드로는 그의 산 것을 사람들에게 보였다.

3. 결과 : 주를 믿음(9:42)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온 욥바 사람이 다비다가 다시 살아난 사실을 알고
많이 주를 믿게 되었다.

결론

  선교의 주체는 예수님이 되어야 한다.
성령의 능력이 없는 선교도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주님의 명령을 따라 우리는 전해야 한다.
주님은 모두가 구원 얻기를 바라신다.
유대인이나 사마리아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가 선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선교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두의 몫이다.
사도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주님은 핍박자 사울을 변화시켜 그리스도를 전하는 도구로 삼으셨다.
사울도 성령 충만하여 전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기도가 없는 선교는 주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는 선교요.
성령의 도움이 없는 인위적인 선교일 수밖에 없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막 9:29)는 주님의 말씀처럼
기도를 통하여 많은 역사가 일어났고,
또 믿는 무리가 많아졌음을 알 수 있다.

  병 고치는 역사는 초대교회에만 있었던 사건이 아니다.
병 고치는 능력이나 회심시키는 능력은 우리에게 있지 않고, 주님에게 있다.
지금 우리에게 병고치는 은사가 없다고 하여서 초대교회의 사건으로만 돌려버린다면
우리는 병을 고쳐 달라는 기도도 할 수 없게 되고,
성경의 말씀을 부분적으로만 믿는 사람이 된다.
우리에게 당장 병고치는 은사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염려할 것은 없다.
사도들도 무제한 적으로 병을 고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딤후 4:20).
바울의 '육체의 가시'는 결코 만족스럽게 치유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영적인 면에서 적극적 유익을 줄 수 있는 장애로 계속 남아 있었다(고후 12:7).
또한 성경은 병든 자를 위해서는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는데(약 5:13),
이 때 기름은 의약용일 수도 있고
병을 그리스도께 맡기는 상징적 용도일 수도 있다(마 8:17).
문제는 병 고치는 능력을 부인할 것이 아니라
그 은사를 사모하여 선교에 적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자신의 병 고침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을 미워하겠으며
또 그러한 정성에 감동하여 예수를 믿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참여하는 선교,
예수님이 중심이 된 선교,
기도로 힘입고 성령의 도움으로 이루는 선교를 이루어
초대교회의 뜨거운 부흥의 역사를 오늘에 실현해야하겠다.



지금 지영이는 서울에 없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전도하면 하늘에서도 기쁠 것이고 예수를 믿는 그 사람도 기뻐서 이렇게 웃을 것입니다.

 

천안 할머니 집에 갔습니다.
지영이는 심심하다고 전화를 자주 합니다.
혜영이 책도 읽어줬다고 합니다.
아빠 뭐하냐는 질문에
공부한다는 엄마 말을 듣고
머리 긁으며?
엄마는 왜 머리를 긁느냐고 물었습니다.
생각이 나지 않으니 머리를 긁지
아빠는 생각했습니다.
지영이는 보지 않고도 아는구나
우리도 하나님 생각만 하면
보지 않고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선교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말입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행 9:31)
 
지영이와 혜영의 믿음.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