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댄동산 처럼
감사하는 그리스도인 <태종대에서 지영이>
물댄동산처럼
2002. 12. 13. 12:42
감사하는 그리스도인
2002년 8월 31일(토) 06시 10분 부산 CBS "주님과 함께"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
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
할지어다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로 미
치리로다"
안녕하십니까? 방금 읽어드린 말씀은 시편 100편의 말씀입니다. 오늘은 본문의 말
씀을 중심으로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자'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감사하는 그리스도인. 어떻게 하면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감사치 않는 사람은, 죄송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
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찬송도 부르고 기도도 하지만, 그 마음에 감사가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여호와가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
리는 감격할 수밖에 없고,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을 불러서 하나님의 나라, 그의 백성으로 삼아주
셨기 때문입니다. 이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공
을 세워서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었습니까? 아무 공로 없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 주신 것이 아닙니까? 그것도 그냥 건져 주셨습니까?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희생 재물로 드림으로, 우리를 마귀의 손에서 건져
내신 것이 아닙니까? 이러한 사실을 믿었고, 알았기에 우리는 감사치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치 않는 사람은 이러한 구원의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이요,
결국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
여 말씀드리지만, 감사치 않는 사람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리
스도인이라 하는 모양은 있을 수 있으나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는 진정한 감사를 드리기 원하십니까? 그러면 여
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아는 자가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자 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소유된 백성이요, 그의 양입니다. 이 말씀을 깨달음으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를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데 대하여 감사해야합니다.
진화론을 주장함으로 많은 사람을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게 했던 다윈도 결국 그리
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의 친구 '호프'여사는 다윈이 사망하기 7개월 전인 1881년 9
월 28일에 다윈이 소파에 누워 히브리서를 읽고 있었다고 증언했으며, 다윈으로부터
최고의 주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에 관해' 설교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
니다. 다윈 박물관에는 그가 평소에 읽던 성경도 전시되어 있는데, 그의 성경은 히브
리서 6장이 펼쳐져 있고, 1,2절의 말씀에는 연필로 밑줄까지 그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
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왜 다윈은 이 말씀에 밑줄을 그었을까요? 다윈이 호프 여사에게 고백한 내용에 그
답이 있습니다. 그 고백을 옮겨 보겠습니다.
"저는 미숙한 사상을 가진 젊은이였습니다. 저는 모든 사물과 현상에 대해 의심을
품고 접근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진화론을 하나의 학문이 아니라 창조론을 적대
시하는 종교로 만들어 신봉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사상이 산불처럼 번져갔고, 사람들
은 그것으로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히브리서 6장 1, 2절의 말씀을 빌리지 않더라도 성경은 완전한 말씀입
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침례, 안수, 부활, 심판, 이 모든 것이 진리이며, 인생들
을 향한 하나님의 올바른 교훈이었다는 것을 다윈은 인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
스도의 가르침을 버렸던 자신의 죽은 행실을 회개한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집니다.
이 땅에 목적 없이 우연히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풀 한
포기, 돌 하나도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만드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는 분명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천하보다도 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놔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시는 우리 예수님은, 죄 많
고 허물 많은 나 하나를 위해서도 기꺼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수 있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다 구원받을 자격자들이고 나 하나만 멸망 받을 죄인
일지라도 우리 주님은 말구유에 오셔서 십자가로 인생을 마치셨을 것입니다. 내 죄
를 사하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요나를 하나님께서 뭐라고 깨우쳐 주셨는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
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
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요나서 4장 10절 11절의 말씀입니다.
심지도 아니하고 가꾸지도 아니한 박 넝쿨, 그것도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요나가 아꼈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직접 지은 사람, 그것도 십 이만여 명이나 되는
사람을 하나님이 아끼는 것이 어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지으
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아껴주시니 이 또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감사가 우리에게 기쁜 노래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소유됨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하였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소유된 것이 왜 감사할 조건이냐고 물으실 분이 계십니
까? 누구의 소유가 된다는 것이 가의 유쾌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소유
가 된다는 것은 유쾌하고 즐거운 일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저들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
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고 반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브
라함의 자녀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녀였으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하였을 것
이나,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도 아니하였고, 또한 예수님을 죽이려고 까지 하였습니
다. 유대인들은 자칭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하였지만, 실상은 마귀의 자녀였던 것입니
다. 마귀의 욕심을 따라 욕심을 행하고, 진리에 서지 못할 뿐만 아니라 거짓의 아비
가 되었던 것입니다.
세상에 중간은 없습니다. 마귀의 자녀이든지 하나님의 자녀이든지, 감사하는 자녀
이든지, 불평하는 자녀이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마귀의 소유가 된 자들은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여 참된 자유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소유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진리안에서 누릴 참된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소유됨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양을 위해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으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
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
노라" 요한복음 10장 14, 15절의 말씀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끼실 뿐만 아니라 친히 소유주가 되셔서 우리
를 돌보신다는 말씀입니다. 안 그렇겠습니까? 내가 어떤 물건을 정성스럽게 만들었
는데 내가 그것을 아끼지 않겠습니까? 고장이 나면 고쳐줄 것이고, 위험을 만나면
피하게 할 것이고,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
다. 나는 내가 가진 재능을 다 알지 못하지만, 나를 지으신 우리 주님은 나의 모든
재능을 다 활용하셔서 하나님의 나라에 귀히 쓰실 것입니다. 내가 병들었을 때 고쳐
주실 것이며, 내가 위험을 만날 때도 가장 안전하게 지켜 보호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염려하지 마십시오. 모세가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유언과도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신명기 31장 6절의 말씀입니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
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
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반드시 떠나지 않
으실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버릴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 하나님은 결단코 우리
를 버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소유로 삼으신 하나님께 우
리 자신을 맡기고, 다만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
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하시기 바랍니다.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로 미치리로
다" 아멘.

2002년 8월 31일(토) 06시 10분 부산 CBS "주님과 함께"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
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
할지어다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로 미
치리로다"
안녕하십니까? 방금 읽어드린 말씀은 시편 100편의 말씀입니다. 오늘은 본문의 말
씀을 중심으로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자'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감사하는 그리스도인. 어떻게 하면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감사치 않는 사람은, 죄송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
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찬송도 부르고 기도도 하지만, 그 마음에 감사가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여호와가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
리는 감격할 수밖에 없고,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을 불러서 하나님의 나라, 그의 백성으로 삼아주
셨기 때문입니다. 이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공
을 세워서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었습니까? 아무 공로 없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 주신 것이 아닙니까? 그것도 그냥 건져 주셨습니까?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희생 재물로 드림으로, 우리를 마귀의 손에서 건져
내신 것이 아닙니까? 이러한 사실을 믿었고, 알았기에 우리는 감사치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치 않는 사람은 이러한 구원의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이요,
결국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
여 말씀드리지만, 감사치 않는 사람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리
스도인이라 하는 모양은 있을 수 있으나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는 진정한 감사를 드리기 원하십니까? 그러면 여
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아는 자가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자 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소유된 백성이요, 그의 양입니다. 이 말씀을 깨달음으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를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데 대하여 감사해야합니다.
진화론을 주장함으로 많은 사람을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게 했던 다윈도 결국 그리
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의 친구 '호프'여사는 다윈이 사망하기 7개월 전인 1881년 9
월 28일에 다윈이 소파에 누워 히브리서를 읽고 있었다고 증언했으며, 다윈으로부터
최고의 주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에 관해' 설교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
니다. 다윈 박물관에는 그가 평소에 읽던 성경도 전시되어 있는데, 그의 성경은 히브
리서 6장이 펼쳐져 있고, 1,2절의 말씀에는 연필로 밑줄까지 그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
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왜 다윈은 이 말씀에 밑줄을 그었을까요? 다윈이 호프 여사에게 고백한 내용에 그
답이 있습니다. 그 고백을 옮겨 보겠습니다.
"저는 미숙한 사상을 가진 젊은이였습니다. 저는 모든 사물과 현상에 대해 의심을
품고 접근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진화론을 하나의 학문이 아니라 창조론을 적대
시하는 종교로 만들어 신봉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사상이 산불처럼 번져갔고, 사람들
은 그것으로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히브리서 6장 1, 2절의 말씀을 빌리지 않더라도 성경은 완전한 말씀입
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침례, 안수, 부활, 심판, 이 모든 것이 진리이며, 인생들
을 향한 하나님의 올바른 교훈이었다는 것을 다윈은 인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
스도의 가르침을 버렸던 자신의 죽은 행실을 회개한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집니다.
이 땅에 목적 없이 우연히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풀 한
포기, 돌 하나도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만드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는 분명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천하보다도 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놔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시는 우리 예수님은, 죄 많
고 허물 많은 나 하나를 위해서도 기꺼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수 있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다 구원받을 자격자들이고 나 하나만 멸망 받을 죄인
일지라도 우리 주님은 말구유에 오셔서 십자가로 인생을 마치셨을 것입니다. 내 죄
를 사하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요나를 하나님께서 뭐라고 깨우쳐 주셨는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
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
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요나서 4장 10절 11절의 말씀입니다.
심지도 아니하고 가꾸지도 아니한 박 넝쿨, 그것도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요나가 아꼈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직접 지은 사람, 그것도 십 이만여 명이나 되는
사람을 하나님이 아끼는 것이 어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지으
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아껴주시니 이 또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감사가 우리에게 기쁜 노래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소유됨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하였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소유된 것이 왜 감사할 조건이냐고 물으실 분이 계십니
까? 누구의 소유가 된다는 것이 가의 유쾌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소유
가 된다는 것은 유쾌하고 즐거운 일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저들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
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고 반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브
라함의 자녀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녀였으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하였을 것
이나,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도 아니하였고, 또한 예수님을 죽이려고 까지 하였습니
다. 유대인들은 자칭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하였지만, 실상은 마귀의 자녀였던 것입니
다. 마귀의 욕심을 따라 욕심을 행하고, 진리에 서지 못할 뿐만 아니라 거짓의 아비
가 되었던 것입니다.
세상에 중간은 없습니다. 마귀의 자녀이든지 하나님의 자녀이든지, 감사하는 자녀
이든지, 불평하는 자녀이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마귀의 소유가 된 자들은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여 참된 자유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소유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진리안에서 누릴 참된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소유됨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양을 위해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으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
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
노라" 요한복음 10장 14, 15절의 말씀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끼실 뿐만 아니라 친히 소유주가 되셔서 우리
를 돌보신다는 말씀입니다. 안 그렇겠습니까? 내가 어떤 물건을 정성스럽게 만들었
는데 내가 그것을 아끼지 않겠습니까? 고장이 나면 고쳐줄 것이고, 위험을 만나면
피하게 할 것이고,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
다. 나는 내가 가진 재능을 다 알지 못하지만, 나를 지으신 우리 주님은 나의 모든
재능을 다 활용하셔서 하나님의 나라에 귀히 쓰실 것입니다. 내가 병들었을 때 고쳐
주실 것이며, 내가 위험을 만날 때도 가장 안전하게 지켜 보호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염려하지 마십시오. 모세가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유언과도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신명기 31장 6절의 말씀입니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
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
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반드시 떠나지 않
으실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버릴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 하나님은 결단코 우리
를 버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소유로 삼으신 하나님께 우
리 자신을 맡기고, 다만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
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하시기 바랍니다.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로 미치리로
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