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댄동산 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8명이 태종대에서 2002년 11월>

물댄동산처럼 2002. 12. 13. 12:43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3절의 말씀을 먼저 읽어드리겠습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
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아멘,

요즘 9살난 우리집 큰딸 지영이가 제게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빠 왜 메일 안보내?"
인터넷에 메일 계정을 만들었는데 아무도 편지를 보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게 편지를 요구하는 것이지요. 심지어는 6살 난 혜영이까지 언니에게 메일을 보내라고
성화입니다.
지영이는 메일을 받으면 바로 답장을 합니다. 그리고는 또 답장을 요구합니다. 날마다
답장 보내는 일에 시간을 다 쓸 수도 없고, 정말 난처합니다. 그래서 하루에 한번만 메일
을 보내겠다고 설득하였습니다.
이런 지영이를 이해하시는 청취자가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도 편지 받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사연이 좋든지 나쁘든지
누군가가 나에게 시간을 내어서 말을 전한다는 것이 참 좋습니다.
그만큼 내가 그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뜻도 되니까요.
무분별하게 보내지는 광고성 스팸 메일도 많이 사라진 지금은, 메일을 열어볼 때마다
설레는 마음이 듭니다. 아무런 메일도 없으면 서운한 마음까지 듭니다. 그래서 답장을 받
기 위해 열심히 편지를 보냅니다. 그러다가 답장을 받으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는 것입
니다.

누구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로 인식된다는 것을, 편지는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종이로 보내진 편지든지, 인터넷을 통한 메일이든지 정성이 가득
담긴 편지는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는 편지의 감동은 이
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편지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특별히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막중한 사명을 띄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라고 기록하
고 있습니다.
왜? 바울은 무슨 의도를 가지고, 무슨 말을 하기 위해, 이런 글을 고린도후서에 기록하
였을까요?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의 사도성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추천서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데 바울에게는 이런 추천서가 없었다는 것입니
다. 그들은 이것을 미끼로 하여 바울을 깎아 내리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자신
의 위치를 높이려 하였고, 자신들의 가르침을 정당화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서 바울은 고리도 교회 성도들이야말로 참된 추천서가 된다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하여 역설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문서로 기록한 천거서, 즉 추천서를 바울에게 써 주지는 않았습니다. 하
지만, 바울이 전한 복음을 통하여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천거서, 즉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였지만, 그는 이것을 자신의 공로를 돌리지 않고, 그 영
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대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바울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지만, 바울의 힘으로 쓰여진 편지가 아닌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쓰여진
편지라고 하는데서 바울의 겸손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
이 바로 천거서이며, 이 천거서는 하나님의 영으로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편지는 돌비에 새긴 것보다 더 값지고 귀한 심비 즉 마음에 새겨졌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적대자들은 사람이 써준 편지를 가지고 왔지만,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새겨준
편지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적자들이 내세우는 편지보다 바울의 편지는
더 영향력이 있고, 확실한 천거서일 수 밖에 없습니다.
종이로 쓴 편지는 읽는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새겨진 편지는 모든 사
람이 볼 수 있습니다. 글을 모르는 사람도 알 수 있는 확실한 증거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종이 위에 먹으로 쓴 글은 지워지지만, 심비에 새긴 글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심비에
새겨진 글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져 오늘날 우리들의 마음까지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다른 천거서는 지금 어디에서도 그 가치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대적자가 가지고 있는 편지는 교회를 분열하게 하였지만, 그리스도의 편지는
교회를 하나되게 하였습니다. 사람이 쓴 편지는 사람을 살릴 수 없었지만 그리스도의 편
지는 사람을 살리며 영생을 얻도록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우리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야 합니다.
편지라고 다 편지가 아닙니다. 전해지지 않는 편지는 편지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받은 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몸으로 전해야 하는 것입니
다.
기독교는 이해될 수 있는 공인된 진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안에는 놀라운 체험이 담
겨져 있습니다. 기독교는 그 자체로서 기독교가 진리라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을 뿐
만 아니라, 구름과 같은 허다한 증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바울의 사도성을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편지라면, 우리는 예수
님을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그의 나라를 확장하는 역할이 우리 손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는 그리스도만 전해야 합니다.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그런 편지가 아닌 심비에 새겨진 편지는 다른 사람에게 몸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나다나엘에게 그리스도를 전한 빌립처럼, 사마리아 성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가 여기 있
다'며 '와 보라'고 담대히 외쳤던 사마리아 여인처럼, 우리도 전해야 합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알지 못하면서 의미 없이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죄의 짐을 지고 그
형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에게, 죽음과 질병에 대한 두려움에 놓여있
는 사람들에게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의 열쇠가 되신 그리스도를 전해야 하겠습니다.
모든 자물쇠에는 하나의 열쇠만 있을 뿐입니다. 인생의 문제를 여는 유일한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새긴 그 복음을 이제 만
민에게 알리고, 만방 중에 선포해야하겠습니다.
시간을 투자하여 우리의 이웃에게,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나라에 필요한 존재인지를
알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하여 그들도 우리들처럼 새로운 인생,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
지신 주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