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댄동산 처럼

현실주의자가 되라 <단풍든 설악산 계곡>

물댄동산처럼 2000. 11. 7. 00:38
오늘의 말씀

오늘의 말씀

    갈라디아서 6장 14절

   그러나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아무것도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써 세상은 나에게 대해서 죽었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현실주의자가 싫다고요?

 
사도행전 13장에보면 5명의 선지자와 교사가 나옵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바나바와 사울은 알겠는데,
시므온이나 루기오나, 마나엔은 잘 모릅니다.
흑인도 있었고, 왕의 동생도 있었는데
그들은 별로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선지자나 교사였다는 것이지요.
 
지금의 얘기로 바꾼다면
안디옥 교회는 협동 목회자들이 5명이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곳으로 선교를 해야합니다.
누구를 보내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성령이 바나바와 사울을 지목하였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좋은 교회
좋은 조건을 놔두고
새로이 개척을 해야합니다.
어떤 위험이 닥칠지도 모릅니다.
그냥 안디옥 교회에 있으면
사례비 걱정, 자녀 교육비 걱정 없고,
교인들에게 대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나바와 사울은 떠났습니다.
고난을 자처한 것입니다.
그런데 고난을 자처한 그들은 많은 일을 하였고
유명해 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편안하게 신앙 생활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바나바와 사울과 같이 고생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저요?
저는 바울과 같이 선교하기 원합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저는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가 자립하면
그 교회에서 길러진 후계자를 담임으로 세우고
개척을 나가고 싶습니다.
 
가장 존경받는 목회자라면
많은 사람들이 김진홍 목사님을 꼽습니다.
왜입니까?
그분의 삶이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빈민촌에 들어가 선교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렇게 하기를 원합니다.
바울이 무엇을 자랑했습니다.
십자가만을 자랑했습니다.
고난이 있었기에 영광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기도할 때에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되고 평안하게 하소서
하는 기도를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사람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을 믿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면 당황하고
자신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고
어떻게 일을 처리해야할지 몰라 쩔쩔맵니다.
쉽게 좌절하고 맙니다.
상황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현실을 바라보십시오.
죽는 그 순간까지 우리에게는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고난이 적든지 많든지
그 고난은 피할 수 없습니다.
고난이 없는 날은 무덤에 들어가는 날입니다.
우리 몸도 수없는 병균과 싸우며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와 함께 고난받음을 기뻐하고 즐거워 해야합니다.
 
이제는 현실주의자가 됩시다.
이상주의자가 되어서
문제를 만나 어리둥절하지 말고
삶에 있어서 고난은 필수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믿읍시다.
나에게 닥칠 문제를 미리 알고
그 고난을 피할 생각을 합시다.
예를 든다면 말입니다.
차를 운전할 때
"믿습니다. 주님!" 하면서 과속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신호를 잘 지켜도 교통 사고가 나는 판인데
신호를 위반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문제를 만나면 일단 감사합시다.
나를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만나면 각오했던 것이니
당황하지 말고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
문제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합시다.
그리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그 문제를 해결합시다.
하나님이 내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믿고
또 하나님께서 나에게 해결할 힘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무조건 하나님께 떠넘기는 것은
시험을 만난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현실을 직시합시다.
주님에게 고난보다 평안을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힘들더라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쪽을 택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실 것입니다.
샬롬



평안하십니까?

 

설악산 비룡폭포에 올라가다가 찍은 계곡 사진입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그대로의 생명력을 말해준다.
추위가 와야 제 빛을 발하는 단풍이나
썩어져야만 향기를 내는 모과나
땅에 떨어져 생명을 품은 밀알에게서 배우자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자연은 침묵으로 말한다. 준행이 믿음.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