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댄동산 처럼

신조광 목사님의 글 - 하나님의 것

물댄동산처럼 2000. 3. 10. 13:23
언젠가 나는 신학생들에게 볼펜 한 자루 끝에 서려있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말한 일이 있다.
볼펜 한 자루쯤은 미미하고 보잘것없게 여겨서 인지, 걸핏하면 잃어버리기가 일쑤이고, 때로는 남의 볼펜을 잠깐 빌려쓴다는 것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손에 쥔 채 가져가 버리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것도 그렇지만 볼펜 한 자루가 쓰여지는 용도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무관심하다. 그래서 책상 앞에 앉아, 쓸데없이 자기 이름이나 생각나는 사람이나 친구의 별명 또는 누구와 함께 이야기 한 의미 없는 말귀 등을 종이 바닥에 써보는 등, 낙서를 해 버리는 일도 적지 않다. 아무튼 누구의 것이든지 무엇을 쓰든지 어떻게 쓰여지든지 크게 관심도 없고, 일정한 규칙도 없고 무슨 철학도 없이 부담 없게 이용되는 것이 볼펜 한 자루다.
그러나 이런 볼펜 한 자루도, 그것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소홀히 여겨도 별로 문제 될 것이 없는 '내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만유의 주시오, 왕이신 하나님께서 맡기신 '하나님의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내 것이라 할 때 소홀히 여겨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것이라고 할 때 우리는 자못 엄숙해지지 않을 수 없다. 무관심하게 내버려두거나 쉽게 잃어버릴 수도 없는 것이며, 그것을 쓸데없는 낙서의 도구로 삼을 수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과 그의 영광을 위해 쓰여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하나님의 것이라면 대소를 막론하고 무겁고 귀하게 다루어야 한다. 이것이 바른 청지기의 자세일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관심과 애착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그래서 소홀히 여겨지고 있는 것은 없을까? 내게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뛰어들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방관하는 일들, 어쩌다가 굴러다니는 한 장의 전도지 조각처럼 별로 큰 값어치가 나가지 않는 것이라 해서 방치해 버린 것들은 없을까? 내게 별로 이해관계가 없다고 해서 무관심해 버린 문제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지 나는 손해보지 않고 편하게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나의 책임밖에 던져진 사람들을 없을까?
기독교인이 방치 방관하거나 무관심 무책임하게 있을 수 있는 일은 이 땅 위에 없다. 그 모두가 하나님의 것이며, 그의 관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이란 이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관심사를 지키고 처리해야 할 청지기이기 때문이다.
청지기에 '내 것'이란 있을 수 없고, '내 것이 아닌 것'도 있을 수 없다. 내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것은 모두 내 것이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다루는 엄숙하고 진지한 마음과, 또 모든 것들을 내 것으로 여기는 관심과 애착, 그리고 사랑으로 대하여야 하겠다.
'한길'은 하나님의 것이다. 또 우리 모두의 것이다. 소홀과 무관심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사랑과 애착과 관심의 대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으면서 볼펜 한 자루의 끝을 응시한다. 그리고 나의 청지기 관을 가다듬어 본다.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전 3: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