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댄동산 처럼

참된 교회의 모습

물댄동산처럼 2001. 10. 27. 04:10
어떤 청년은 교회를 나가기 전에 소화제와 두통약을 먹어야 한다고 제게 고백해 왔습니다.
그리고 곧 그 교회를 떠날 것이란 얘기도 해 주었습니다.
그 교회가 교회의 참된 모습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교회가 참된 교회일까요?

먼저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지체라는 사실이지요.
왼손이 다쳤을 때 다친 손을 싸매 주는 손은 왼손이 아닙니다.
몸 어느 한곳이 아프면 온몸이 아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 지체입니다.

어떤 나그네가 한 마을을 지나가면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업고 밭에 씨를 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자신들은 문둥병자라는 것입니다.
손가락이 없는 사람이 손가락은 있으되 다리가 없는 사람을 업고 씨를 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모습 속에서 교회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느 소녀가 집에 놀러온 아빠 친구에게 자기 인형 자랑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예쁜 인형들이 참 많았습니다.
아빠 친구분은 그 소녀에게 물었습니다.
이 많은 인형 중에 넌 어떤 인형이 제일 좋으니?
하고 말입니다.
그 소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웃지 않기로 약속하면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아빠 친구는 그러마고 약속을 하였고,
소녀는 인형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일그러지고 팔 하나가 떨어져나간 흉한 인형이었습니다.
그래 잘 알겠다. 그런데 왜 그 인형을 좋아하지?
하는 물음에 그 소녀는 대답했습니다.
내가 아니면 사랑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한 지체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의 몸 부위 중에서 가장 많이 생각나는 부분이 어디인가요?
허리가 아픈 사람은 허리라고 말할 것이고,
저같이 눈 하나가 보이지 않고
그로 인하여 사팔뜨기라는 놀림을 받고
난 분명히 상대를 보고 말하는데
상대는 내가 다른 곳을 쳐다보며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는 줄 알고
뒤돌아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전 제 눈에 가장 많은 신경을 씁니다.
옷보다도 머리보다도 눈이 더 신경이 쓰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약한 부분에 신경을 쓰게 마련입니다.
교회도 그래야 합니다.
힘없고 병들고 돈없는 사람
누구도 관심을 않지 않는 그런 사람이 교회에 있다면
그 교회는 참된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음식을 먹음으로 키가 자라고 몸이 건강하게 됩니다.
음식은 내가 아니지만 내 안에 들어와서 내 몸의 일부가 됩니다.
강물이 흘러 바다에 들어가면
이미 강물이 아니라 바닷물이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들어왔다는 얘기는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가 사는 것입니다.
나의 모습은 교회에서 찾아볼 수 없고
주님의 몸만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교회에 다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있게 됩니다.
성도간의 다툼은 예수님의 몸을 찢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몸이라면
형제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
형제의 잘못이 나의 잘못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다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은 조건이 없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그렇게 사랑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피를 나눈 한 형제입니다.
그래서 나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