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댄동산 처럼
나는 저만한 믿음이 없단 말인가?
물댄동산처럼
1999. 9. 7. 14:24
편지 잘 받았습니다.
늘 성의 있는 편지로 저를 즐겁게 해 주시는 수현자매를 사랑합니다.
이슬람교도들의 모습을 통하여 도전을 받았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의 정성을 우리 기독교인들과 비교해 보면
우리는 너무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을 통하여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나는 저만한 믿음이 없단 말인가?"
아주 심각한 질문이면서
아주 비전 있는 질문입니다.
왜냐고요?
자신의 문제를 알고
그 문제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담긴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알면서도 그 문제를 등한히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자신 앞에서 무책임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안다면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누가 해결해 주겠습니까?
사실은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아니, 지금도 제 문제를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처음 신앙 생활을 시작한 것은 중학교 3학년입니다.
한, 두 달 신앙 생활을 하였지만
다른 사람은 1년 이상 신앙 생활을 한 사람이라고 봐 주더군요.
그만큼 신앙 생활에 적극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이 빨리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도 빨리 깨달았고,
회개의 기도와 구원의 확신으로 새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식사시간에 기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알량한 체면 내지는 주위의 이목(耳目)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어도
친구들은 기도하였지만 저는 쳐다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결심을 하였습니다.
이제는 기도를 하자!
그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언제부터 기도를 시작했을까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입니다.
입학하자마자 아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저 같은 경우는 그 지역의 학교에 입학을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없지요.
전에는 (중학교 3학년 때에는)
기도하지 않던 애가 갑자기 기도한다고 했겠지만
이제는 그런 시선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아! 저 애는 교회 다니는 애고, 원래부터 기도하는 애구나.
이렇게 인식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시비 거는 사람도 없고,
저에게는 거리낄 것도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제 주위로 교회 다니는 애들이 모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반장과 부반장부터 시작해서 몇 명이 모였습니다.
그리고는 각자 기도하고 밥을 먹는 것입니다.
다만
학생들이 많은 관계로 소리내서 기도할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 믿는 애들끼리 먼저 친해졌던 것입니다.
그 친구들도 밥을 먹기 전에 기도하기가 쑥스러웠는데
저로 인하여 기도하고 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좋은지!
수현 자매도 예수 믿는 친구가 있을 것입니다.
그 친구와 함께 밥을 먹으면서 기도하십시오.
친구들을 의식하지 마시고, 체면 차리지 마시고,
기도하십시오.
한번만 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됩니다.
시작이 어렵지 나머지는 쉽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 같습니다.
늘 성의 있는 편지로 저를 즐겁게 해 주시는 수현자매를 사랑합니다.
이슬람교도들의 모습을 통하여 도전을 받았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의 정성을 우리 기독교인들과 비교해 보면
우리는 너무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을 통하여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나는 저만한 믿음이 없단 말인가?"
아주 심각한 질문이면서
아주 비전 있는 질문입니다.
왜냐고요?
자신의 문제를 알고
그 문제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담긴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알면서도 그 문제를 등한히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자신 앞에서 무책임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안다면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누가 해결해 주겠습니까?
사실은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아니, 지금도 제 문제를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처음 신앙 생활을 시작한 것은 중학교 3학년입니다.
한, 두 달 신앙 생활을 하였지만
다른 사람은 1년 이상 신앙 생활을 한 사람이라고 봐 주더군요.
그만큼 신앙 생활에 적극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이 빨리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도 빨리 깨달았고,
회개의 기도와 구원의 확신으로 새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식사시간에 기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알량한 체면 내지는 주위의 이목(耳目)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어도
친구들은 기도하였지만 저는 쳐다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결심을 하였습니다.
이제는 기도를 하자!
그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언제부터 기도를 시작했을까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입니다.
입학하자마자 아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저 같은 경우는 그 지역의 학교에 입학을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없지요.
전에는 (중학교 3학년 때에는)
기도하지 않던 애가 갑자기 기도한다고 했겠지만
이제는 그런 시선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아! 저 애는 교회 다니는 애고, 원래부터 기도하는 애구나.
이렇게 인식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시비 거는 사람도 없고,
저에게는 거리낄 것도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제 주위로 교회 다니는 애들이 모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반장과 부반장부터 시작해서 몇 명이 모였습니다.
그리고는 각자 기도하고 밥을 먹는 것입니다.
다만
학생들이 많은 관계로 소리내서 기도할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 믿는 애들끼리 먼저 친해졌던 것입니다.
그 친구들도 밥을 먹기 전에 기도하기가 쑥스러웠는데
저로 인하여 기도하고 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좋은지!
수현 자매도 예수 믿는 친구가 있을 것입니다.
그 친구와 함께 밥을 먹으면서 기도하십시오.
친구들을 의식하지 마시고, 체면 차리지 마시고,
기도하십시오.
한번만 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됩니다.
시작이 어렵지 나머지는 쉽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