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댄동산 처럼

유정 자매님 힘내세요 <혜영이 어린이집으로 출발>

물댄동산처럼 2000. 5. 14. 21:31
오늘의 말씀

오늘의 말씀

시편 121장 5~6절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유정 님이 교생 실습하는 곳이 불교 재단이라구요?
힘든 일이 많겠습니다.
다른 학교에서는 다 허용되는 기독교 학생활동이 공식적으로 불가능하다니...
얼마나 힘이 드십니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감사한 일입니다.
알곡만이 곡간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12; 눅 3:17)
선생님 한 분과 스무 명 가량 되는 학생들이 저는 알곡과 같이 보입니다.
신설동 교회 최치언은
한양대 의대를 다니고 있습니다.
이 친구가 불교 재단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핍박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그 친구는 그곳에 파송된 선교사라는 사명감으로 학교를 다녔다고 합니다.
불교가 종교간의 대화를 말하고
너도나도 다 진리라고 말은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가 봅니다.
 
유정님은 그곳에서 빛을 보셨다고 했습니다.
지도 교사가 없어도 먼저 기도하고 찬송하는 그들
"엄지손가락"
왜 이런 이름을 지었을까요?
불교 재단의 학교에서 기독교 신앙의 선생님이 계시다는 것도 그렇고
그 학교의 역사가 얼마나 되는 지 모르지만
10년동안 엄지손가락의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유정 자매님도 이제는 초신자가 아닙니다.
형제 자매라는 말도 익숙해졌고,
사랑이라는 말도 익숙해 졌으니 말입니다.
저는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너무 많이 사용하니까
사람들이 처음에는 감동을 하다가 이제는 늘 그러려니 합니다.
그래도 저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좋은 말이 없어서 계속 사용합니다.
어느 나라에서는 부부가 하루에 3번이상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이혼 사유에 해당한답니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 부부가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집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
그런데 제 집사람은 그런 말을 잘 하지 않습니다.-.-;
어쩌다가 그 말을 들으면 하루종일 신이 납니다. O.o
이렇게 좋은 말을 아낄 수 있습니까?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라는 것
이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저도 부흥 집회에 우연히 가본 적이 있습니다.
아니 친구의 강권함을 따라 간 적이 있습니다.
대학에 다닐 때였습니다.
제가 얘기했던가요?
대학 다닐 때 기도 동지가 있었다고...
저는 혼자서 기도 할 때가 많았습니다.
외로워서 기도했고,
슬퍼서 기도했고,
힘들어서 기도했습니다.
혼자서 기도하다가 기도 동지를 만났습니다.
함께 기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말이지요.
그 친구가 기도원에 간다는 것입니다.
저도 따라갔습니다.
집회를 참석하는데
임낙풍 목사님이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곳은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운영하는 기도원인데
그곳에, 그리스도의 교회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반가웠지만
옛날에 그 목사님과 논쟁하였던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유정 님이 부흥회에 대하여 좋지 않은 감정을 갖았던 것과도 같겠지요.
그러나 바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선입관을 갖고 설교를 듣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면 아멘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임낙풍 목사님은 달랐습니다.
다른 부흥사와 차원이 달랐습니다.
오직 말씀 중심의 설교였습니다.
다른 부흥강사들은 재미있게,
청중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설교를 하는데
이분은 오직 성경에서 예화를 꺼내고,
말씀 이외의 것은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선입관을 갖고 있었기에
은혜 받을 것을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기도원 바닥에 무릎을 꿇고 회개와 감사의 기도를 하였습니다.
옷이 더러워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선입관이 얼마나 무서운지
우리는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감리교와 장로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진리가 더 중요합니다.
교파가 다 무엇이며,
교단이 다 무엇입니까?
초대 교회도 그런 분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쟁은 육신에 속한 사람들이 하는 일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3절에서 5절의 말씀을 보면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사람은 조금씩 다른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도신경만이 신앙 고백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시편에 보면 많은 신앙 고백이 나옵니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시 16:5)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 18:2)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시 23편)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 27:1)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시 28:7)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시 119:57)
성경 신구약을 합하면 얼마나 많은 신앙 고백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유정 님이나 저나 똑같은 하나님을 다르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선생님으로, 때로는 친구로, 때로는 주인으로....
그렇다고 우리의 신앙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다른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닙니다.
이단이라면 모를까.
우리는 하나입니다.
 
영안이 밝아서 다 보인다고요?
그 강사님 이름이 뭡니까?
그렇게 교만할 수 있습니까?
저는 솔직히 그런 사람, 그가 목회자라고 하더라도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어떤 의도로 말씀 하셨는지는 몰라도
과장이 심합니다.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것입니다.
유정 님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 모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짐작할 뿐이겠지요.
아니면 사기를 치는 것입니다.
저도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 목사님 대뜸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형제는 기도를 많이 하지 않는 군요."
나참 기가 막혀서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 자기는 기도 많이 한다고 말합니까?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은
"이 목사님 정말 대단하다. 내가 기도 하지 않는지 어떻게 알았지?"
하고 생각하고는 그 목사님을 무서워할지도 모릅니다.
몇 시간 기도하느냐고 묻더군요.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제가 대학 다닐 때는 기도를 2시간 이상씩 했습니다.
그 목사님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못하더군요.
만일에 그 목사님이 영안이 밝아서 내 속을 안다면
얼마나 더러운 인간인지 파악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나의 더러운 모습을 알고서도
이해하고 용서하고 감싸주십니다.
사람이 내 속을 안다면 아마도 돌을 들어 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안을 밝혀도 그 정도로 밝혀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독심술을 은사로 주시지 않습니다.
그 목사님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나를 그렇게 칭찬을 했다는 군요.
 
하나님은 우리가 힘들 때 더욱 가까이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강하게 하십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하듯이(롬 5:20)
고난이 많은 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항상 승리하시는 유정님이 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3)
 
혜영이가 가방을 메고 새롭게 출발을 합니다. 자, 새롭게 출발하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