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댄동산 처럼

진실한 감사 <2002년 11월 자갈치 시장에서 지영이와 혜영이>

물댄동산처럼 2002. 12. 13. 12:41
진실한 감사

2002년 9월 21일 부산 CBS '날마다 주님과 함께'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입니다. 추석은 한해의 농사
를 돌보아준 조상들께 대한 감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훌륭한 조
상을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아야 하겠습
니다. 그렇다면 어떤 감사가 진실한 감사일까요? 많은 음식을 차려놓고 절만 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일까요?
오늘은 요나서 2장 9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진실한 감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말씀을 봉독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
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

요나는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다시스로 도망 가다가 큰 풍랑을 만나 바다에 던져
져 물고기 밥이 되었습니다. 금방 읽어드린 말씀은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
님께 기도 드린 내용의 끝부분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요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물
고기를 명하여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하였습니다.

먼저, 우리는 구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은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
리를 살리시는 분입니다. 물고기 뱃속에서도 요나를 살리실 수 있는 분이 우리 하나
님이십니다. 요나가 바다에서 만난 그 풍랑도 요나를 죽이는 풍랑이 아니라 도리어
요나를 살리는 풍랑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만일에 하나님의 징계
가 없다면 우리는 사생아요 고아 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2장 8절
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구원은 선민에게만 국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니느웨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요나를 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적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니느웨 사람들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하나님 앞에서 충성스런 인물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요나를 억지로라도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였
습니다. 니느웨를 구원할 뿐만 아니라 나약한 요나를 깨우치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토록 구원하고자 했던 니느웨는 어떤 도성이었습니까? 범
죄의 도성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았고, 또한 하나님을 두려워하
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니느웨 성을 구원하시고자 하셨던 것
입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손으로 직접 지으신 하나님의 자녀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구원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살리고자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죄가 있어도 심판하시기 전에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부족하고 연약하지
만 사용하시기를 즐겨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구원하시기를 즐거워하시는 분이십니다.
침 뱉음과 조롱을 당하시고, 채찍과 가시 면류관에 온몸이 상하여도 우리를 위해
서라면 기꺼이 잔을 드시는 분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시고도 자신
의 옷을 제비뽑아 나누고자 하는 군병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시는 분이 우리 예수님이
십니다.
이처럼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합
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도 감사를 드렸습니다. 풍랑을 준비해 주시고, 또한 큰 물
고기를 준비하셔서 자신을 깨우쳐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그는 감사하는 목
소리로 제사를 드리며 서원을 갚겠다고 하였습니다. 구원의 주체자가 되신 하나님께
서 자신을 물고기 뱃속에서 건져, 구원해 주실 줄로 믿었기 때문에 이런 기도를 드
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물고기를 명하
여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하였습니다. 자연 만물을 친히 다스리시고 운행하시는 분
이 우리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다시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정말, 요나는 그의 기도대로, 목소리로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니느웨 성 사람들을 변화 시켰고, 니느웨 성 사람들은 왕으로부터 돼지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과 짐승들이 베옷을 입고 회개하며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제사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 이보다 더 큰제사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
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
니"(삼상 15:22)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구원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입었다면 그의 말씀에 순종해야할 것입
니다.

오스카 와일드가 쓴 '그 날 이후'라는 글에는 예수님께로부터 은혜를 입은 사람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지상에 내려오신 예수님은 한 술 주정꾼을 만났습니다. 거의 폐인이 되어 손발을
떠는 그에게 예수님은 물으셨습니다. "형제여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소?"
술 주정꾼은 예수님을 가만히 보더니 깊은 한숨을 쉬며 말하였습니다.
"나를 고쳐 준 분이군요. 내가 절름발이였을 때 당신이 건강한 다리로 고쳐주셨지
요. 절름발이일 때는 구걸하며 살아도 부끄럽지 않고 그런 대로 살아갔는데 두 발로
뛰면서부터는 얻어먹을 수도 없고 마음에 맞는 직장도 없고 하여 방황하다가 이처럼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이번에는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
님은 한 불량자가 선창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고 있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대낮에 이게 무슨 짓이오?"
꾸짖으시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아본 그 불량자는 흐느껴 울면서 이렇게 말하였
습니다.
"예수님 아니십니까? 전에 앞을 못 보던 소경이었을 때 당신은 진흙을 발라 나의
눈을 뜨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때는 정말 기뻤고 온 세상이 나의 것이었습니다. 그러
나 정작 눈을 뜨고서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니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결국 화풀이를 하다 보니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비록 소설 속의 사건이지는 하지만, 이들은 예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진정 믿음으로 치료를 받았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
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스카 와일드가 이런 소설을 쓴 의도도 모
르는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저들이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왔고, 주님께서 믿음대로 그들을 치료하여
주셨다면, 저들은 비록 배운 지식이 없어도, 맘에 드는 직업이 없어도, 낙심하지 않
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돌보심은 한도 없고 끝도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
직까지 믿음 있는 사람이 망하는 일을 본 일이 없습니다. 그들이 믿음을 저버렸다면
몰라도, 최소한의 믿음을 가졌다면 그들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을 것이고 어떠한
일이라도 찾아 보람 있게 살았을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썩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변화시켜야할 책임이 신앙인들에게 있는
이상은 불량자가 되어서 싸움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바른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절대 실업자가 되지 않습니다. 절대
불량자가 되지 않습니다.
그의 마음에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물고기 뱃속에 갇혀 있다 하더라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넘쳐나는 위액으로
인하여 자신의 몸이 이리 쓸리고 저리 쓸리는 한이 있어도 낙담하지 않습니다. 도리
어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봅니다. 비록 자신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심판을 받는 줄 안다 하더라도, 책망하시고 싸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에 낙심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라도 줄 수 없는 큰
은혜를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이 은혜는 조건을 따져서 베풀어지는 그런 은혜가 아
닙니다. 니느웨와 같은 죄인에게도 베풀어지는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치 않고 도망가는 요나와 같은 우리들에게도 베풀어지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이제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무슨 말씀으로 우리에게
명하시든지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뜻대로 사는 삶이 가장 큰 감사
요. 가장 큰 제사임을 깨달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의
감사인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그리고 부모님께 대하여 가장 큰 은혜의 보답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조상들에게 많은 음식으로 제사하려 하지말고, 화려한 묘지로 효
도하려하지 말고, 그분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아름다운 신앙의 덕을 실천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순교로서 신앙의 정절을 지키신 믿음의 선진들을 따라 몸으로 감사하는
추석 명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