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댄동산 처럼

열심히 모이기를 기도합시다.

물댄동산처럼 1999. 8. 17. 10:25
감사합니다.
먼저 믿은 사람들이 더 교회에 열심히 나와야 하는데
진영 자매님께서 기도해 주시면
고2뿐만 아니라
모든 실로암 학생회원들이 열심히 출석할 것입니다.
교회 출석은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첫째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혼자서 기도하는 것보다 함께 기도하는 것이 좋고,
혼자서 찬송하는 것보다 호흡을 같이하여 찬양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진영 자매님이 주일에는 못나오고 토요예배에만 나올 수 있다고 해서 무지무지 서운했습니다.
그렇다고 초신자에게 열심을 강요할 수도 없고,
그런데 진영 자매님은 주일에도 나오셨습니다.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우리 교회에는 건의함이 있습니다.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학생부가 되기를 원합니다.
혹시 고쳐야할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모두가 참여하여 함께 만들어 가는 학생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뒤에서 불평만 하고,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그런 학생은 싫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느낌 점을 메일로 보내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많은 참고가 될 것입니다.
예배가 즐겁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맛보아 아는 사람이라면,
죽인다고 해도 예배를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교회에 나가기 위해
밤에 담을 넘고,
늦지 않으려고, 밤길에서 뛰다가 넘어져 다시 집으로 와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교회에 간 일도 있습니다.
학생들이 예배에 자주 빠지는 것은 일차적으로 저에게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사실 제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무엇을 잘못하는지 제 자신이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기 원하는 것입니다.
질문이 없으면 답이 없듯이
문제제기가 없으면 해결점도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학생들이 얘기하지 않아도 스스로 발전을 모색해야겠지요.
학생들이 요구해도 제 능력의 부족으로 못하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말아야지요.
선영이가 다른 교회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교회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영 자매가 하는 말이 이유가 됩니다.
그 교회 학생들의 생활태도가 싫다는 것입니다.
제가 선영 자매의 어머니에게 말하였습니다.
"자신이 기쁘게 신앙 생활할 수 있는 곳에서 신앙 생활을 하게 해 주십시오."
결국 어머니도 승낙을 하셨습니다.
교회를 억지로 다니면 신앙이 성장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싫어서,
보다 더 기쁘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교회가 있어서 떠나간다면
저는 말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주인의식을 가지고 잘못된 점을 고치려고 한다면 더 좋겠습니다.
감정적이고, 습관적으로 그런다면 평생을 가도 자신에게 맞는 교회는 찾지 못할 것입니다.
완전한 교회를 찾는다면
그런 교회를 찾았다면
이런 사람은 그 교회에 가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 때문에 완전하지 못한 교회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동네로 이사를 하는 사람이
어떤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제가 이사하려는 동네는 좋은 곳입니까?'
'전에 살던 동네는 어떠했소?'
'형편없었습니다.'
'이 동네도 형편없소'
'에이씨'
잠시후 다른 사람이 이사를 온다면서 똑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예, 제가 살던 동네는 참 좋은 곳이었습니다.'
'이번에 이사가는 동네도 참 좋은 곳입니다.'
할아버지는 같은 동네를 서로 다르게 평가를 해 주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는 것이고,
개 눈에는 X만 보이는 이치와 같습니다.
전자의 사람은 불평하는 사람이고,
후자의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불평하게 되어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감사를 합니다.
불평하는 사람에게 마을 사람은 냉랭하게 대할 것이고,
결국 형편없는 동네가 되지만
감사하는 사람은 마을 사람을 따뜻하게 할 것이며,
결국 좋은 동네가 될 것입니다.
저는 진영 자매를 통하여 우리 교회가 더욱 밝은 교회,
더욱 좋은 교회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