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댄동산 처럼

믿지 않는 사람과의 교제를 고민하는 자매님께 <폐백사진>

물댄동산처럼 2000. 9. 16. 08:15
오늘의 말씀

오늘의 말씀

    베드로전서 1장 7절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안녕하십니까?
저는 자매님의 편지를 받은 이준행 목사입니다.
답답한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그런 입장이라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일단 자매님의 입장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자매님의 가정은 철저한 기독교 집안이고, 형부는 목회자이십니다.
자매님도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고, 가정은 행복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군요.
사귀는 남자가 있는데,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고,
지금 새아버지와 어린 동생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 남자의 나이는 30세.
새아버지나 어머니가 남자 친구를 어렵게 한다구요?
그런데 새아버지가 위암으로 올해 초에 입원을 하셨습니다.
자매님이 남자 친구의 집으로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어머니가 점쟁이의 말을 듣고,
남자 친구과 새아버지와 같이 살면 둘중에 하나가 죽는다고
나가 살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자매님은 그런 말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고요.
남자 친구의 어머니는 불교를 믿으시고, 외삼촌은 스님이 된다고 합니다.
남자 친구도 나가서 사는 것을 원하고,
자매님에게는 이제부터라도 교회를 다니겠다고 말합니다.
둘만 결혼해 사는 것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집안이 문제이군요.
지난번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약속대로
다시 제 의견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자매님에 대해서는 위에 적은 것 이외에 아는 것이 없습니다.
자매님의 이름도 모르겠고, 나이도 모릅니다.
다만 20대라는 것을 짐작할 뿐입니다.
성경에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합니다.
두 사람이 의견을 같이 하지 않고 어찌 동행할 수 있겠느냐고 합니다.
대부분의 목사님들이나 성도들은
믿지 않는 사람과의 결혼을 반대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남녀 비율을 따져보면
여자가 더 많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단순한 논리로 따져 보아,
기독교인은 기독교인과 만 결혼해야 한다면
노처녀들이 교회에는 더 많을 것입니다.
제가 아는 신설동 교회만 보더라도
노총각보다 노처녀들이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일부다처제가 되지 않는 한
노처녀의 문제는 여전히 교회의 숙제로 남게 됩니다.
결혼은 신성한 것입니다.
남녀가 합하여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법칙입니다.
때문에, 결혼을 하지 말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 결혼은 아무하고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준비된 사람과 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자매들의 경우
결혼을 함으로써
한 남자에게 자신의 일생을 맡겨야 합니다.
자신만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2세들까지도 맡기는 것입니다.
한 남자로 인하여 자신의 인생이 불행해 질 수도 있고,
행복해 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행복은 서로 만들어 가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그렇다고, 연습 삼아 결혼해보자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많은 아픔과 상처가 남게 됩니다.
자매님은 남자 친구를 착하다고 좋다고 평가를 했습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아직 교회를 다니지 않고 믿음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남자 친구가 교회를 다니겠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너무 반가운 말입니다.
남자 친구를 먼저 위로해 주시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 친구에게는 누구보다도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의원이십니다.
병든자를 치료해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남자친구의 상한 심령을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그 다음에 새아버지를 전도하십시오.
아버지만 전도할 수 있으면 어머니는 더 쉬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새아버지를 전도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아는 허 전도사의 이야기를 잠시 해 드릴까합니다.
허 전도사는 우연히 만난 자매에게 구애를 하였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예수를 알지도 못하는 자매가
신학생의 구애를 받아들였습니다.
문제는 그의 부모님인데
반대가 무척 심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여자 친구의 아버지가 병환 중에 있었습니다.
허 전도사는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병실에 들어섰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용기를 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화장실로 갔습니다.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통성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경비 아저씨가 달려왔습니다.(그 다음은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허 전도사는 기도로 힘을 얻고
다시 병실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무작정 아버님의 손을 잡고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불쌍한 심령을 위로하여 주십시오.
지옥이 있는 줄도 모르고 세상에서 제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기도를 하는데 아버님이 그대로 듣고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제 끝났구나' 하고,
서울로 올라왔답니다.
몇 달 뒤에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아버지의 유언대로 집안이 다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둘은 결혼을 하였습니다.
지금 천안에 살고 있습니다. 행복하게.
자매님!
힘을 내십시오.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저는 믿지 않는 사람과의 결혼은 원칙적으로 반대합니다.
그 이유를 말씀 드린다면
가장 큰 이유는 제가 예수 믿는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랑 결혼하든지 저하고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을 우선 사랑하기 때문에 반대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해서 좋은 것보다는 어려운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연애와 결혼은 다릅니다.
연애할 때는 자주 만나지 못합니다.
결혼을 하면 같이 살아야 합니다.
연애할 때는 다투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지만
결혼한 후에는 돌아갈 집이 없습니다.
연애할 때는 만날 때마다 신경을 쓰고
친절을 베풀고, 때로는 자신을 위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한 후에는 자신의 모든 모습이 다 드러납니다.
허물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이상향이 꿈이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연애할 때는 신비감으로 만납니다.
그러나 결혼한 후에는 신비감이 없습니다.
연애할 때는 꿈을 꾸지만 결혼을 하면 현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결국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과 자신 사이에 다른 점이 많이 나타나게 됩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가 뭘 알겠습니까?
그런데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릅니다.
동성과도 성격 차이가 많은데 이성은 두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능성입니다.
가능성이 보인다면 반대하지 않습니다.
자매님이 사귄다는 그 남자에게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이 자매님에게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성입니다.
그 남자 친구는 상처가 많습니다.
부모가 이혼을 하였고,
새로운 가정에서 잘 적응하지도 못하였습니다.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자매님은 그 친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남자 친구는 사람의 정이 그리울 것입니다.
사랑 받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질투를 많이 할 것입니다.
무엇인가 누구에게라도 의지하고 싶을 것입니다.
작은 일에도 소심하여 상처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반대적인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도전적이고,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보는 견해는
자매님의 평가대로 착할 것 같습니다.
혹시 그 남자 친구의 친구들을 아십니까?
어떤 친구를 사귀고 있는지 말입니다.
가족만 안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 친구들까지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자 친구는 착한데
그가 사귀는 친구들이 그렇지 못하다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0중 8,9는 그 친구들과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말이 좀 빗나갔습니다.
남자 친구는 예수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가능성이지요.
이제 그 가능성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만드십시오.
그리고 그 집안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매님의 집안에서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매님
용기를 내십시오.
진정 그 남자를 사랑한다면
그리고 그 남자를 믿는다면
뒤돌아보아서 후회할 것이 없다면
용기를 내어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 주십시오.
기도하여 승리하십시오.
이 편지를 읽고
느낌을 적어
한번 더 제게 편지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결혼은 한번만 하는 거야

 

제 결혼 사진입니다.

 

지영이는 아빠랑 결혼하고 싶다고 합니다.
혜영이도 그럽니다.
아빠가 말했습니다.
아빠는 이미 엄마랑 결혼했는데?
아빠가 다른 여자랑 결혼하면 좋겠어?
두 딸은 신데렐라나 콩쥐팥쥐 얘기를 들어서인지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한번 결혼했기 때문에 또 결혼할 수 없다고 둘러댑니다.
엄마는 지영이에게 아빠 같은 남자랑 결혼하라고 합니다.
전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가족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전 4:11)
 
준행이와 진희의 믿음.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