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댄동산 처럼

기쁨이를 보내는 마음

물댄동산처럼 1999. 8. 10. 18:31

재은이의 편지를 오랜만에 받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어제 공항에 갔었습니다.

누구 때문이지는 모르겠지만

교회에서 2시 30분에 만나서 간다는 말에

저는 그 시간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공항에 가보니

다른 학생들은 이미 와있었고,

기쁨이는 떠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편지는 전해주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기쁨이와 많이 친해졌습니다.

교회봉사도 많이 했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 주었던 기쁨이.....

그래도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기쁨이는 우리를 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쁨이는 항상 우리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보다 더 성숙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다행히도 E-mail이 있어서 우리는 소식을 바로바로 전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사진도 보내주겠지요.

기쁨이를 떠나보내는 공항에 재은이가 나타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못 온다고 메일을 보내고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공항에서 예쁜 재은이를 만났기에 다행이고,

목사가 되고서 처음으로 메일을 받았으니 앞으로도 계속 보낼 것이기 때문에 다행입니다.

전도사와 목사가 무엇이 다릅니까?

우리는 다같이 왕같은 제사장이 아닌가요?

하나님의 나라에 직분이 중요한가요?

전도사만 전도하고, 목사만 목회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직함만 다를 뿐이지 다같이 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한 식구입니다.

제가 목사가 되었다고 달라진 것은 직함뿐입니다.

재은이를 사랑하는 마음이나

우리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한결같습니다.

제가 말씀 드렸나요?

대학교 때 제가 기숙사에 들어갔는데 방장이 그러더라구요.

좌우명이 뭐냐고.

'저는 남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 좌우명은 변함이 없습니다.

사랑하며 살기도 짧은 인생 보람있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방장이 그런 말은 위선이라고 하였지만

그래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지만

이런 말이라도 해야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말을 해놓고 나중에 가서

'나는 당신을 위해 희생할 수 없어'

이렇게 말할 수 없을 것 아닙니까?

물론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은 한계가 있습니다.

뭐 어떻습니까.

저는 기도할 수 있는데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지요.

걱정하지 않습니다.

기도의 능력을 믿으니까요.

한 몸 가지고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우선 순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당위성만 있을 뿐입니다.

그 일이 무엇이든지

그것이 이루어져야할 필요성이 있다면 하나님은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요?

사실 우리의 믿음은 부족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믿음 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했는데도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창 17:8)

이 얼마나 믿음 없는 말입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삭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신지.

 

제가 바쁘면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답장 쓸 시간 정도는 있습니다.

이제는 모든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지 않고,

칼럼에 제 글(답장)을 올리고 있습니다.

칼럼에 쓸 글의 주제도

'제 편지 메일이 그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칼럼을 메일로 채우고자 합니다.

편지도 정성을 드려서 쓰고

유익한 내용을 담고자 합니다.

그러니 메일로 제가 쓸 글의 주제 혹은 소제를 제공해 주세요.

 

모두에게 예의바른 재은이가 되세요.

그리고 거리감을 두지 말고 친절을 베푸세요.

그러면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재은이가 될 것입니다.

 

끝으로 기쁨이의 사진을 같이 감상(?)하면서 글을 마칠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