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댄동산 처럼

예배보다 사랑을 원하시는 하나님 <지영이와 은혜언니>

물댄동산처럼 2000. 6. 4. 19:42
오늘의 말씀

오늘의 말씀

    호세아 6장 4절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仁愛)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예배보다 사랑을 원하시는 하나님

어느 시골에 한 농부가 살았습니다.
그 농부는 어깨 너머로 한방을 공부했습니다.
의사의 처방전을 메모해 두는 습관이
이제는 의원 소리를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장인이 치질에 걸렸습니다.
장인이 부르는데 안 갈 수는 없고,
치질을 고칠 방법은 없고,
고민이었습니다.
그래도 사위 된 입장에서 안 가볼 수 없어서 가기는 갑니다.
고민하면서 가는데,
뒤가 급하여 냇가로 내려가 볼일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이 그 앞에서 볼일을 보는 것이 아닙니까?
공교롭게도 그 사람도 치질 환자였습니다.
아니 그런데 갑자기 괴한이 나타나
그 사람의 목을 칼로 치고 달아났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이 잘리는 그 순간에
항문 밖으로 삐져 나왔던 창자가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농부는 이것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장인을 찾아가 증세를 살펴보았는데
그 때 죽은 그 사람과 증세가 같았습니다.
그래서 장인을 그 냇가로 데리고 가서 볼일을 보는 자세로 앉혔습니다.
그리고는 칼을 가지고 목을 쳤습니다.
다만 치질을 고쳐야 한다는 것만 생각하고 더 중요한 목숨은 생각지 않은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중에는
사소한 것 때문에 더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는 잃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 몇 푼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에 참석치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공부 때문에, 어떤 사람은 노느라고
예배 시간을 빠집니다.
주일 대예배만 예배인줄 압니다.
일주일에 한번만 예배 드리면 되는 줄 압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끝없이 호흡하기를 원합니다.
끝없이 숨쉬기를 원합니다.
날마다 하나님과 대화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80년 사는 육체를 위해 영원한 생명을 포기합니다.
영혼은 피폐해 가는데 육체만 살찌우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라면
장인을 죽인 농부와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 4절에
"그러나 에브라임아,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너희 사랑은 아침 안개 같구나.
덧없이 사라지는 이슬 같구나."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원하십니다.
5절, 6절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나는 예언자들을 시켜
너희를 찍어 쓰러뜨리고
내 입에서 나오는 말로 너희를 죽이리라.
내가 반기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제물을 바치기 전에 이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알아 다오."
형식적인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을 위하는 척하는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그러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예배를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원하십니다.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입니다(마 22:36-40).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사무엘상 15장 22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순종의 제사가 아닌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전에 환원운동연구소 학술 세미나에서 윤억중 목사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은혜 받으러가자, 축복 받으러 가자는 식의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께 나 자신을 드리러 가는,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라는 것은 엎드린다는 말입니다.
나 자신을 드리는 것이 진정한 예배인 것입니다.
찬송도 하나님께 드리고, 기도도 드리고, 설교를 통하여 나 자신을 드리고,
헌금을 통하여 나 자신을 드리는 것이 진정한 예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중심으로 드리는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삶을 통하여 드려지는 우리의 삶을 받으시기 원하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
우리 자신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드리는 것이 사랑을 전제로 한 드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9장 13절에 하신 예수님의 말씀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하신 뜻이 무엇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리의 집에서 잡수실 때에 바리새인들에게 정죄를 받았습니다.
"죄인은 벌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죄인과 가까이 하는 것은 죄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죄인의 친구가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고, 죄인일 수 밖에 없다."
그들은 이런 논리를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간음하여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돌로 치는 사람이 진정 의인입니까?
돌아온 아들에게 가락지를 끼워주며 잔치를 베푼 아버지에게
불평을 하는 큰아들이 과연 의인입니까?
그들은 의인인 체하는 죄인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형식적인 의인의 모습보다는
죄인까지도 사랑하는 그 인애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안개같은 사랑, 이슬같이 금방 없어지는 사랑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갑시다.
그래서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 사랑을 배우고 변함없는 사랑을 실천합시다.
 
 

형식적인 사랑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랑을 합시다.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 은혜 언니랑 지영이랑

 

하나님의 사랑은 진실한 사랑입니다.

죄인까지도 사랑하시는 사랑.

그 사랑이 우리에게 예수님으로 나타났습니다 .

80년 사는 인생을 위해 영원을 포기하는 사람은 장인을 죽인 농부와 같습니다.

사랑하며 살아도 짧은 세상 미워하지 맙시다.

지영이와 은혜 자매의 믿음.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