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댄동산 처럼

요한의 그리스도론

물댄동산처럼 1999. 12. 6. 02:58
성경의 중심에는 예수가 있다. 구약은 다시 오실 예수에 관하여 말하고 있으며, 신약은 오신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다. 물론 이 이론에 대하여 주관적이고 편협하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 아니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유대인들은 유대인 나름대로 성서관을 갖고 있다. 신약은 인정하려고 하지 않으며, 아직 메시야가 오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성경의 중심에 예수가 있다고 하면,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이슬람교도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유대인이 고대하는 메시야가 온다고 할지라도 그도 역시 예수님과 같은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만큼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한 분이 없으며, 예수만큼 하나님의 뜻을 따른 사람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성서의 증언을 믿으며, 또한 그 역사성을 믿는다. 성서가 증언하는 예수님에 대하여 전적으로 신뢰한다. 나는 성서를 읽어가면서 예수를 더욱 자세히 알아간다. 사도들도 역시 예수를 처음부터 잘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요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요한도 예수를 처음에는 사람으로 여겼을 것이다. 예수를 확실히 안 후에,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게 되었을 것이다. 오늘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예수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조직 신학을 말하고자 함도 아니다. 다만 요한이 말하고 있는 예수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요한은 예수를 로고스라고 고백한다. 태초부터 있었던 말씀이 바로 로고스요, 예수님이시다. 그는 세상을 지었고, 그의 안에는 생명이 있었다.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인데,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은 어두움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를 보내기 전에 그를 증거 할 사람 세례 요한을 보냈다. 그를 통하여 아들 예수를 믿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을 수 있다.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은혜와 진리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사도 요한의 고백은 로고스 찬가(讚歌)로부터 시작이 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요한이 말하는 그리스도 예수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요한은 예수를 다른 복음서 기자들처럼, 육신의 몸을 먼저 거론하지 않는다. 다만,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먼저 선포한다. 유대인이 기다리던 메시야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족보를 따지거나, 동정녀 탄생을 거론하지도 않는다. 예수는 그런 사건으로 하나님의 아들 혹은 하나님이라는 것이 증명될지 않는다. 설사 증명된다 하더라도, 그런 조건만 갖추었다고 다 메시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당시에는 동정녀 탄생과, 다윗의 후손과 관계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 조건은 다만, 어둠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이지, 그것이 전부는 될 수 없다. 그래서 요한은 이러한 사소한 것을 언급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요한은 예수를 분명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선포한다. 하나님과 동등 된 분이라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천지를 창조하셨고, 생명을 가지고 계신 빛이라는 것이다. 이는 단적으로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 육신의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 요한은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예수가 육신의 옷을 입었다는 것보다, 예수가 있는 곳에 영광이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요한은 체험적인 신앙을 강조한다. 요한일서 1장에 보면 그것이 잘 나타나 있다.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3 우리가 보고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함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여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요한의 신앙은 흔들림이 없다. 항상 그의 중심에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생명의 말씀이시며,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우리와 함께하신 분이시며, 서로 사귐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요한에게 특징적인 것, 즉 그가 중요시 여기는 것이 또 나타난다. 그것은 합일사상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일한 위치에 서 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도 그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는 것이다. 얼마나 희망적이고, 용기를 주는 말인가. 어쩌면 이 말이 고난을 당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싸워주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피난처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이 고난은 잠시 후면 끝이 난다." 어쩌면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말하기를 요한은 원했을 것이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도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요한 계시록에서 보면,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가 되신다. 통치하시고, 다스리신다. 악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새 나라를 창조하신다. 이 땅에서는 더 이상 소망이 없기 때문이다. 소망이 없는 세상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시는 것이다. 부술 것은 부수고, 만들 것은 새로 만드신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꿈꾸어왔을 것이다. 죄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죽어가고, 고난의 세월이 계속되는 가운데, 역사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개입과 원수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을 기대한다고 하였을 때, 이 말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요한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부각시켜 드러내고 있다. 고난을 당하시는 예수님, 그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영광은 존재한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억지로 주장하지 않아도, 그리고 구약의 예언을 빌어서 증명하려고 하지 않아도, 예수는 그리스도 즉 메시야가 되신다. 이것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사도들과 사귐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믿지 않는다면(요한은 그것을 어둠이라고 표현한다) 하나님께로 나아올 수도, 구원받을 수도, 생명을 얻을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도 체험을 얻어야 한다. 요한이 듣고, 보고, 주목하고, 만진바 되었던 그 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만남이 있어야 우리에게 생명이 있고, 죄악 된 어둠은 물러가고, 온전한 사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외면 당하는 이 시대 속에서, 우리는 한줄기 빛을 만난다. 요한이 남긴 글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살아서 다가옴을 느낀다. 추운 겨울도 이제는 춥지 않으리라.


아래 사진은 어부동 다녀오면서 찍은 것입니다.
겨울에 여름을 맛보시라고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