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는 큰 능력이 있습니다.
그 큰 능력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귀신의 기도도 들어주셨습니다.
하물며 천하보다 귀한 우리들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가 떡을 달라는데 돌을 줄 부모가 없듯이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보다 더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십니다.
문제는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신 다는 말씀을 더 많이 하셨습니다.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기도
의심하는 기도 외에는 다 응답해 주십니다.
믿음으로 기도하십시오.
믿음으로 구하는 기도가 참된 기도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모세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다니엘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과 지금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다릅니까?
아닙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은 기도는 참된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느끼지 못하면서 어떻게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의자를 앞에 두고 기도를 합니다.
예수님이 그 자리에 앉아 계시다고 믿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영국 여왕이 한 할머니를 찾아가
"할머니 예수님께서 자주 오시지요?"
하고 물었는데, 할머니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은 할머니가 왜 아니라고 할까하고 의아해 했는데
예수님은 자주 오시지 않고 함께 사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짐이라는 사람이 교회에서 기도를 하는데
매일 12시에 그것도 아주 짧게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12시만 되면 싱글벙글 좋아하더라는 것입니다.
간호사가 신기하여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다녀가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했느냐니
"짐, 나야 나"
하고 가시더라는 것입니다.
매일 짐은 교회에 가서
기도는 할 줄 모르고
다만 "예수님, 짐이 다녀갑니다. 짐이에요. 짐"하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개인마다 신앙이 다릅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잘 아는 문둥병자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를 만났습니까?
그는 엘리사의 음성만 전해들었습니다.
처음에는 화가나서 돌아가려고 했지만
종의 말을 듣고 그 말에 순종했습니다.
결국 어린아이 살같이 깨끗해 졌습니다.
나아만은 더 좋은 피부를 갖게 된 것입니다.
어린아이 살이 얼마나 좋습니까?
아무리 좋은 화장품을 쓰고 로션을 바른다고 어린아이 살같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나아만은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는 엘리사를 만난것입니다.
엘리사의 말을 전해들은 것이 바로 그것이며
엘리사의 말에 순종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혈루증 앓던 여인이 자신은 율법에서 정한 부정한 여인이라고
율법에 순종하는 의미로 군중들을 헤집고 예수님께 가지 않았더라면
그는 경건한 신앙인이라는 말은 들을 수 있을지 몰라도
병은 치유 받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혼자 집에서 부르짖었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마 마음만 더 아팠을 것입니다.
부르짖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만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리만 크게 지르며 기도한다고 그것이 기도가 됩니까?
예수님을 믿지도 않고
예수님을 영접하지도 않고
예수님의 말씀과는 무관하게 기도하는데
그것이 참된 기도가 됩니까?
우리가 잘아는 갑돌이와 갑순이가 왜 결혼을 못했습니까?
고백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은 했지만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갑돌이는 고백을 했습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갑순씨 사랑합니다. 저와 결혼해 주십시오."하고 큰소리로 말하고
혹은 다정하게도 말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집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고백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안그렇겠습니까?
갑돌이가 갑순이를 사랑하는데
혼자 몇번씩 고백하는 연습도 하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만일 용기를 내어 갑순이 앞에서 고백했더라면
아마 둘이는 결혼햇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 기도는 헛된 기도가 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심하며 드리는 기도
예수님의 능력을 반신반의하면서 드리는 기도는 응답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 1:6-8)
여인은 예수님을 구체적으로 만났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것입니다.
만일 여인에게 이런 믿음도 없었고,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는 계속 혈루증을 앓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그것도 가난하게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부정한 여인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불행하게 살다가 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였다면
혈루의 근원이 마르는 변화도 체험하지 못하였을 것이고.
기쁨도 체험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다만 머리 속으로만 병고침을 받은 자신을 상상만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신앙인이라는 이름만 갖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믿음보다 형식이 앞서고
실천보다 명분이 앞섭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무늬만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무늬만 그리스도인이라면 기도의 체험을 맛볼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문제를 만났을 때 신앙으로, 기도로,
혹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문제를 극복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바쁘신데 내 기도까지 들어주시겠어?
나는 죄인이라 내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을거야.
무슨 소리입니까?
귀신의 기도까지 들어주셔서
예수님은 돼지무리에게 들어가라고 허락하지 않았습니까?
만일에 제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전 돼지 값을 물어낼 수 없어서
귀신의 청을 거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신의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천하보다 귀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의 좁은 생각안에 가두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기도함으로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 큰 능력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귀신의 기도도 들어주셨습니다.
하물며 천하보다 귀한 우리들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가 떡을 달라는데 돌을 줄 부모가 없듯이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보다 더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십니다.
문제는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신 다는 말씀을 더 많이 하셨습니다.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기도
의심하는 기도 외에는 다 응답해 주십니다.
믿음으로 기도하십시오.
믿음으로 구하는 기도가 참된 기도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모세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다니엘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과 지금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다릅니까?
아닙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은 기도는 참된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느끼지 못하면서 어떻게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의자를 앞에 두고 기도를 합니다.
예수님이 그 자리에 앉아 계시다고 믿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영국 여왕이 한 할머니를 찾아가
"할머니 예수님께서 자주 오시지요?"
하고 물었는데, 할머니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은 할머니가 왜 아니라고 할까하고 의아해 했는데
예수님은 자주 오시지 않고 함께 사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짐이라는 사람이 교회에서 기도를 하는데
매일 12시에 그것도 아주 짧게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12시만 되면 싱글벙글 좋아하더라는 것입니다.
간호사가 신기하여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다녀가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했느냐니
"짐, 나야 나"
하고 가시더라는 것입니다.
매일 짐은 교회에 가서
기도는 할 줄 모르고
다만 "예수님, 짐이 다녀갑니다. 짐이에요. 짐"하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개인마다 신앙이 다릅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잘 아는 문둥병자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를 만났습니까?
그는 엘리사의 음성만 전해들었습니다.
처음에는 화가나서 돌아가려고 했지만
종의 말을 듣고 그 말에 순종했습니다.
결국 어린아이 살같이 깨끗해 졌습니다.
나아만은 더 좋은 피부를 갖게 된 것입니다.
어린아이 살이 얼마나 좋습니까?
아무리 좋은 화장품을 쓰고 로션을 바른다고 어린아이 살같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나아만은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는 엘리사를 만난것입니다.
엘리사의 말을 전해들은 것이 바로 그것이며
엘리사의 말에 순종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혈루증 앓던 여인이 자신은 율법에서 정한 부정한 여인이라고
율법에 순종하는 의미로 군중들을 헤집고 예수님께 가지 않았더라면
그는 경건한 신앙인이라는 말은 들을 수 있을지 몰라도
병은 치유 받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혼자 집에서 부르짖었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마 마음만 더 아팠을 것입니다.
부르짖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만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리만 크게 지르며 기도한다고 그것이 기도가 됩니까?
예수님을 믿지도 않고
예수님을 영접하지도 않고
예수님의 말씀과는 무관하게 기도하는데
그것이 참된 기도가 됩니까?
우리가 잘아는 갑돌이와 갑순이가 왜 결혼을 못했습니까?
고백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은 했지만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갑돌이는 고백을 했습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갑순씨 사랑합니다. 저와 결혼해 주십시오."하고 큰소리로 말하고
혹은 다정하게도 말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집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고백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안그렇겠습니까?
갑돌이가 갑순이를 사랑하는데
혼자 몇번씩 고백하는 연습도 하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만일 용기를 내어 갑순이 앞에서 고백했더라면
아마 둘이는 결혼햇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 기도는 헛된 기도가 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심하며 드리는 기도
예수님의 능력을 반신반의하면서 드리는 기도는 응답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 1:6-8)
여인은 예수님을 구체적으로 만났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것입니다.
만일 여인에게 이런 믿음도 없었고,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는 계속 혈루증을 앓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그것도 가난하게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부정한 여인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불행하게 살다가 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였다면
혈루의 근원이 마르는 변화도 체험하지 못하였을 것이고.
기쁨도 체험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다만 머리 속으로만 병고침을 받은 자신을 상상만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신앙인이라는 이름만 갖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믿음보다 형식이 앞서고
실천보다 명분이 앞섭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무늬만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무늬만 그리스도인이라면 기도의 체험을 맛볼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문제를 만났을 때 신앙으로, 기도로,
혹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문제를 극복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바쁘신데 내 기도까지 들어주시겠어?
나는 죄인이라 내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을거야.
무슨 소리입니까?
귀신의 기도까지 들어주셔서
예수님은 돼지무리에게 들어가라고 허락하지 않았습니까?
만일에 제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전 돼지 값을 물어낼 수 없어서
귀신의 청을 거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신의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천하보다 귀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의 좁은 생각안에 가두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기도함으로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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