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댄동산 처럼

아빠를 의지합시다. <혜영이와 아빠>

물댄동산처럼 2000. 5. 18. 10:17
경주에서 대구까지
어제 수요 예배를 드리면서
폐회기도 시간에 얼마나 웃음을 참으려고 노력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본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지영이와 혜영이는 옆 교육관(?)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혜영이가 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는 순간 긴장했습니다.
오늘 점심 먹으면서 담임 목사님께
혜영이 얘기를 하면서
혜영이는 울 때 '아빠!'하고 운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울기 시작하는데 '엄마!'하고 말하면
저는 실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 염려는 기우였습니다.
'아빠!'하고 우는 것입니다.
얼마나 우수웠던지....
우리 지영이도 혜영이도
주로 아빠를 많이 찾습니다.
엄마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인지.....
 
어쨌든 우리는 참 아버지가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잊지 맙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징계하시기도 하는데...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며
또 벌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어제 제가 설교했던 설교의 일부를 여기에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은 호세아서 4장 전체였습니다.
긴 글은 읽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서.... 쩝.
 
 

오늘의 말씀

호세아서 4장 5절

너는 낮에 거치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거치리라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망합니다.

 
세상에 멸망당하고 싶은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지옥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러면 당신 지옥 가!"하고 말하면 싫어합니다.
아무리 부드럽게 말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믿지 않으면 선생님은 지옥에 갈 것입니다."
한번 해 보십시오. 지옥을 믿지 않으면서도 지옥에 간다고 말하면 싫어합니다.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신이 있습니다.
과학을 신처럼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을 신처럼 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언인가 의지할 것을 찾는 것은 사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참 우스운 것은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나약한 사람으로 여깁니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자기는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보다
강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한편으로는 내가 종교를 갖으면
남들이 나를 약하게 볼 것이라고 생각하여 믿음을 포기합니다.
제 친구 중에 권투를 했던 친구가 있는데
바로 이런 생각을 하는 친구였습니다.
철학자 파스칼은 참 재미있는 말을 하였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자신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도 큰 모험이지만 자신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믿는 것도 하나의모험입니다."
또한 파스칼은 불신자의 모험이 신자의 모험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재미있게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이나 천국과 지옥을 믿는 사람과 그런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만약 하나님과 내세가 없다면 그 두 사람은 자신들의 믿음과 관계없이 동일한 처지에 빠집니다.
불신자라 하여 더 큰 이익을 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도 계시고 내세도 있다면
그것을 믿은 사람은 큰 이익을 볼 것이고,
불신한 사람은 큰 불행을 당할 것입니다.
확률적으로 불신자가 신자보다 더 큰 모험을 한다는 것이 파스칼의 주장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렇게 열심히 믿었는데
만일에 천국이 없다면 얼마나 억울하냐고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 믿어서 손해 봤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저도 천국과 지옥을 떠나서 예수님이 없었더라면 어떠했을까?
나의 인생에서 예수님이 없었다면 나는 불행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믿습니다.
인생을 승리하는 비결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거짓으로 예배한다면 그는 승리가 아니라 도리어 멸망을 받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더 말씀 드리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들의 죄를 지적하고 계십니다.
사생아요 고아가 아니기 때문에 죄를 지적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이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 12:5-8)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2)
이 시간 죄 없다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나하고 죄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저는 이미 십자가의 공로로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는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지적하는 죄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사랑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거짓을 말하고, 맹세도 지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혹은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족하여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살인과 강도가 어떻게 우리 안에 들어왔습니까?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워하는 마음은 이미 살인을 저지른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5절에는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하였습니다.
간음과 강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죄를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아내가 간통을 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혹은 내 딸이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것이 그럴 수도 있는 일입니까?
강통죄를 폐지하자는 사람도 자기 식구에게는 안된다고 말할 것입니다.
딸같은 10대를 상대로 음란한 짓을 하면서
그들이 내 자매요 내 혈육임을 왜 생각지 못한단 말입니까?
내가 살기 위해서는 사람이 죽어도 됩니까?
근로자들은 직업병에 시달리는데
돈만 많이 벌 수만 있으면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니란 말입니까?
전태일이 왜 노동법 책을 안고 분신 자살을 해야만 했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다만 자살을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정죄를 받아야 하나요?
그를 자살로 몰고 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나요?
꼭 칼을 들고 사람을 죽여야만 살인자입니까?
열악한 근로 조건에서 노동자들을 혹사시키는 것도 살인이며,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며,
함께가 아닌 나만을 위하여 돈을 모으면
그것이 바로 살인입니다.
 
호세아는 주전 8세기 북이스라엘에서 예언활동을 하던 예언자입니다.
호세아가 활동하던 시기는
북이스라엘이 마지막 전성기를 구가하던
여로보암 2세 말기부터 앗시리아에 멸망되기까지의 기간입니다.
여로보암 2세는 오랜 기간 북이스라엘을 통치하면서,
영토를 북으로 하맛 어귀로부터 남으로 아라바해(사해 동쪽 연안지역)에 이르는 지역을 정복했습니다.
그는 모압 등 정복지로부터 조공과 중개무역을 통해 부유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 2세 때의 풍요는 왕과 일부 귀족들의 몫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빈부의 격차가 커져 있었고,
귀족들은 부귀영화와 사치스러운 생활에 탐닉했습니다.
이러한 풍요로움은 여로보암 2세 사후에 끝이 났고,
북이스라엘에서는 부귀와 영화를 계속 유지하려던 귀족층간의 내란이 그 뒤를 이어 계속됩니다.
설상가상으로 북으로부터의 앗시리아의 서방정벌은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여로보암 시대에 정복지에서 조공을 받았던 이스라엘은 이제 앗시리아에게 엄청난 양의 조공을 바쳐야 했습니다.
축소된 영토와 전쟁으로 인해 국토는 황폐해졌지만,
백성들은 조공을 위해 과중한 인두세를 내며 피폐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모든 부귀영화는 귀족들이 누리다가
나라의 짐은
백성들의 어깨에 떨어진 꼴이지요.
그러나 귀족들은 친앗시리아파와 반앗시리아파로 나뉘어지고 내란을 거듭하다가
결국 앗시리아에게 멸망당하고마는 비운을 맞이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교훈 합니까?
이 땅은 재벌들의 나라가 아닙니다.
다같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의 호소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신명기 10장 18절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가난한 자들을 형제같이 대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신명기 14장 29절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축복을 주시리라"
 
 
 
어린아이와 같아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어린아이 처럼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힘들면 하나님을 부릅시다.